2021.11.24. MOMO, LETTER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시간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난 들꽃을 보면 전쟁이 떠올라. 전쟁 때 우리는 꽃을 꺾지 않았어. 꽃을 꺾는다면 그건 누군가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서였지... 작별을 고하려고..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든, 전쟁이 지나간 곳이든 들꽃은 피어납니다. 강원도 춘천시에 위치한 미군기지, 캠프페이지 부지에도 마찬가지예요. 1951년 한국전쟁 중에 건설된 캠프페이지는 56년 뒤인 2007년에 반환 되었고, 한국 정부는 2012년에 정화 작업이 완료되었음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준치를 웃도는 오염물질은 계속 발견되었고, 지금도 폐유가 담긴 드럼통들이 쌓여 있으며 그 사이로 검은 기름이 흘러나옵니다.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땅에서, 폐유가 젖은 나무가 쓰러져있는 땅에서, 사람이 다니지 않는 땅에서, 그곳에서도 들꽃은 피어납니다. 들풀과 함께 말이지요. 누구의 자리, 누구의 땅일까요? 피스모모가 준비한 전시 S.O.S (Soil to Oil, Oil to Soil 흙에서 기름으로, 기름에서 흙으로)는 반환 되었으나 돌려받지 못한 땅, 캠프페이지를 마주합니다. 기름으로 얼룩져버린 땅은 "접근금지"라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전시를 둘러보다 보면 조금은 쓸쓸하고 황량한 곳에 꽃과 풀만 가득한 땅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무도 앉지 않는 벤치 사이로 키가 훌쩍 커버린 들풀만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요. 궁금해집니다. 거기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들풀은 어떤 장면을 목격하고 무엇을 경험했을까요? 기름 썩은 내가 풍기는 땅에서 피어난 꽃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그 땅에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몇 년 전 반환 되었지만 아무도 갈 수 없는 땅에 꽃과 풀이 피어납니다. 기름으로 얼룩지고 듬성듬성 파헤친 흔적의 땅이지만 그럼에도 초록이 무성한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전히 땅은 살아 숨을 쉬어내고 있는 듯 해서 말이에요.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 독일 베를린에 있는 템펠호프 공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들이 모여있고 들꽃과 들풀이 펼쳐져 있으며 그곳을 평화롭게 즐기는 사람이 함께 있는 풍경입니다. 캠프페이지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여요. 이곳은 공항이 있던 자리로 2008년 폐쇄된 이후 아파트와 중앙도서관 등을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시민들의 요구로 공항 개발을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고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며 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평화로울 수 있으려면, 나의 평화만을 내세워서는 안되겠지요. 다른 존재의 안녕과 안부를 묻는 것, 아주 작은 들꽃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보려고 합니다. 이 전시는 다음 주 수요일(12월 1일)까지,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근처 아트 스페이스 이색에서 열립니다. 모두의 것으로서의 땅, 모두의 것으로서의 평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프로그램 안내 |
평화와 서로 배움의 이야기, 피스모모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레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