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가림이나 잘해야지, 내가 뭐라고 오지랖인가”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이 나의 삶에 깊숙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우선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일상에만 에너지를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러다보면 이미 내 삶에 깊숙이 닿아있는 세상의 여러 모서리들을 발견합니다. 먹거리가 그렇고, 교육과 집 등 선택을 반복하고 살아야 하는 우리 삶의 모든 얼굴들이 그렇습니다.
어디 하나 내가 아닌 존재들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있을까요? 그렇게 연결되며 교차되는 지점들이 단단한 구조로 굳어지며 사회를 만들고 세계를 만드는 것일텐데요.
10월의 마지막 레터는 우리 삶의 모든 곳에 스며든 연결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모든 존재에게 해롭지 않은 선택을 하며 남은 2022년을 채우고 싶어요. 더슬래시 레터 시작합니다.
딸기와 메아리와 돌멩이의 정치 / 푸른
이렇게 나의 매우 사적인 모든 장면들은 매우 사회적인 이야기와 만나고, 언제 어디서나 나는 정치와 부딪히고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내리는 결론은, 지금의 수도권 중심의 사고와 체제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한 농정, 지속가능한 농촌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농촌에서 계속 농사지으며 살고 싶은 나와 남편을 위해서도, 농촌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암환자인 아버지를 위해서도,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 위해서도, 뱃속에 있는 나의 아이를 위해서도 어떤 쪽으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더슬래시 독자들에게 바랄 수 있는 건 계속 갸우뚱하며 살아가자는 것뿐이다. 계속 질문하고, ‘친환경’, ‘스마트’ 같은 말속에 어떤 알맹이가 있는지 계속 의심하길.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농촌이 농촌의 전부라고 속지 말길. 진짜 농촌을 경험해보길. 농민 친구를 사귀어 보길. 지역의 작고 다양하고 소중한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수도권 중심의 정치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도록 메아리와 돌멩이가 되어주시길.
나는 후쿠시마 이후 일본과 제주 강정 마을에서 동료들과 나름의 평화 활동을 실천해왔다. 나에게 평화 활동은 우리가 만들어가려는 사회가 비판과 저항, 반대와 찬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시각과 창조하는 사회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자연농법과 먹거리 교육이었다. 하루 세 번의 밥상에서 세상사를 알 수 있다. 꼭 모두가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내가 먹는 이 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의 손에서 자랐는지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세상은 내가 서 있는 자리부터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 생명이 나에게 전해오기까지 온전히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소중하게 여기고, 이 생명이 자라기까지 들었을 노고와 상업적인 과정에서 희생된 존재들의 고통을 존중하며. 세상을 덜 고통스럽게 연결해 나갈 방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춘천은 방사능 문제도, 캠프페이지의 오염 문제도 우선 ‘덮어 놓자’는 힘이 여전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개인 활동가로서 혹은 춘천지역 시민사회 단체 차원에서도 반향을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인 현실이다. 주리님은 이런 상황에서 미군기지가 있었던 도시들끼리 모여서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지역의 문제를 직면해야 할 책임을 모두가 함께 직면하고 연대하면, 문제를 짊어질 무게 또한 덜어지지 않겠냐는 의미였다.